애증의 관계, 일(Work)

사우디아라비아

삶의 무거움 2013. 8. 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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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 기억이 없다.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또래들과 추억을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 기억을 전해줄 사람들, 사진과 같이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줄 물건조차 없기 때문이다. 군것질 삼아 보냈던 도사리 수북한 길가를 떠올리고 싶을 때는 온전히 내 기억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기억을 하나 꺼내보자. 어렸을 적 아버지가 사우디 공사현장에서 일했던 기억이 난다. 80년대 중동 건설붐이 일어났을 때였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단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사막위에서 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찍었던 사진이다. 귀국해서 자동차 수리점을 했으니 그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아버지가 걸었던 길은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는 수학, 과학을 통해 기술을 배우는 이과보다는 언어와 사회를 배우는 문과를 원했었고, 중동은 나와 한참 멀다고 이때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운명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건축공학의 길을 걷고있고, 이번 9월에는 아버지가 일했었던 사우디 TIHAMA 현장으로 3개월간 가게 되었다. 시기도 그때 건설붐처럼 지금 중동은 플랜트붐이 한창이다.

그렇다. 나 자신도 모르게 나는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밟고 있었다. 이번 인턴 기회는 각별하다. 1학기 때 탈락의 고비를 마시다가 들려온 합격소식이라 더욱 특별하다. 마치 마른 땅에 피어나는 꽃처럼 이번 합격은 나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막상 출국날짜가 다가오니 떨린다. 3개월이라는 시간. 짧지만 긴 시간이다.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많이 부딪히고 배우고 올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다가와서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맡을 수 없는 아버지의 땀냄새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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