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적 기억이 없다.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또래들과 추억을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 기억을 전해줄 사람들, 사진과 같이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줄 물건조차 없기 때문이다. 군것질 삼아 보냈던 도사리 수북한 길가를 떠올리고 싶을 때는 온전히 내 기억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기억을 하나 꺼내보자. 어렸을 적 아버지가 사우디 공사현장에서 일했던 기억이 난다. 80년대 중동 건설붐이 일어났을 때였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단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사막위에서 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찍었던 사진이다. 귀국해서 자동차 수리점을 했으니 그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아버지가 걸었던 길은 나와 무관하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