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티거(Tiger)

삶의 무거움 2013. 5. 3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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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 산문집 <포스트 잇>읽어보면 도널드덕 인형 이야기가 나온다. Willy Puchner 사진작가는 1.5미터짜리 펭귄 인형들을 데리고 세계 여행을 한다. 여행을 통해 여행사진의 고정된 관념을 흔드는 사진가의 의도이었다. 작가는 그렇게 도널드덕 인형을 구매하고 함께 여행을 한다.

 태어나서 인형을 사본적은 없었지만, 책을 읽고나니 인형을 구매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읽다가여기저기 홈페이지를 돌아다녔다. 무엇을 살지 정해진 것은 없었다. 클릭을 하면서 갑자기 '요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결핍의 마음을 인형을 통해 채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이리저리 홈페이지를 돌아다녔다. 홈페이지를 가보니 토토로와 리락쿠마, 사슴모양을 한 푸치바비가 나의 간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아는 캐릭터 인형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눈빛들에 대해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야 더욱 애착이 가지 않겠는가. 털이 북실하고 귀여운 토토로를 사고 싶었지만 (스튜디오 지브리 저작권 때문인지) 무거운 가격에 뒤로가기 버튼을 클릭한다.  나름 까다롭게 고르던 도중 나랑 닮았다는 M의 말에 티거가 나의 리스트에 선정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크기. 휴대성을 고려해서 너무 크면 안되고 사진을 찍어야 하니 너무 작으면 안되었다. 원하는 크기를 골라 다시 이곳저곳에 발자국을 남긴다. 결국 원하는 사이즈를 찾았다. 배송비까지 포함해서 저렴한 가격인 6천 7백원에 주문버튼을 클릭한다.

 인터넷 쇼핑을 오랜만에 했는지, 배송이 기다려진다. 수업이 끝나고 율곡관 지하에서 티거가 담겨있는 박스를 수령하고, 상자를 조심히 뜯어본다. 드디어 주인과 만난 티거. 뚜렷한 검은 눈,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싶은 입. 그꼿꼿한 꼬리. 나의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오늘 마지막 수업을 기다리면서 입과 손, 다리를 흔들면서 즐거워했다. 주변의 동생들이 웬 인형이냐고 궁금해한다. 나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된 티거는 관심을 받아서 그런지 더욱 웃는 얼굴같다. 

 이렇게 나의 아이폰 카메라 앨범에는 티거의 사진이 하나씩 하나씩 채워갈 것이다. 그냥 찍지 왜 굳이 인형인가? 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권해주고 싶다. 인형과 노는 일이 유치해 보여도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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