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음악,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삶의 무거움 2022. 7. 3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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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독후감 대회가 열려 각 잡고 썼던 독후감인데 안 뽑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강한 역설을 함축하고 있는 책의 제목처럼 이 소설은 어딘가 특이한 구석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설의 정의를 보란 듯이 비껴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은 시간의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배치되었고, 작가는 서사의 전면에 나타나 발화자로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인물들은 덜 가공된 상태로 부유하기를 망설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과장된 몸짓으로 자유를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의 끈을 팽팽히 당기는 것은 이 소설의 빼어난 매력이다. 나아가 쿤테라만의 독특한 시간 사용법은 이 책의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인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전형적인 구속을 탈피하여 날것 그대로의 위태로움을 드러내는 이 소설은, 따라서 가장 진보적인 형태의 가공이자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설계된 탐미적인 작품임을 암시하고 있다.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자.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에 대한 쿤테라의 해석은 이렇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번만 있는 것이며 한번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즉, 영원성이 무거움이라면 이 일회성은 가벼움이다.

과연 우리의 삶은 가벼운가. 우리의 삶은 무수한 모순으로 가득하기에 어느 한 쪽을 삶의 본질로 받아들인다는 생각은 매우 유치하고 안이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특이할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삶이 가벼웠던 적은 결코 없다. 테레자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삶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필연의 법칙을 따른다. 인생이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는 문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토마시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부인과 이혼한 뒤로 아들까지 내팽개치고 여자 사냥에 몰입했다. 섹스는 하되 동침은 하지 않는다는, 에로틱한 우정의 불문율을 고수했던 그는 동물적인 본능에 충실한 사내였다. 그러나 개인의 욕망에 지극히 충실한 이 사내에게도 삶은 무거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체코 공산주의자들에게 자신들의 죄를 통감할 것을 촉구한 글이 문제가 되었을 때, 토마시는 기꺼이 추락을 선택했다. 그가 대단한 지사적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토마시의 삶은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조국의 삶과 평행선을 이루었으며 세계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이처럼 삶이란 본질적으로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단 하나 뿐인 삶, 어찌해도 이것은 가벼움이 아니라 무거움이다. 쿤테라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는 어떠한 인간도 사소한 말싸움에 집착하지 않는다. 다툼과 모욕, 분쟁과 상처는 일순간 수그러들며 오히려 지난날 삶의 활력을 상징하는 희극으로 변모한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존재는 참을 수도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이지만 자신의 일생에서 이를 깨닫는 이들은 많지 않다. 우리의 삶은 누구도 정의할 수 없으며 우리는 세계의 일부이자 이를 구성하는 주체로서 주어진 하루를 담담히 살아나가야 한다. 희극과 비극, 영원과 순간, 무거움과 가벼움의 모순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긍정과 초월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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