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생각

심심한 사과에 대한 단상

삶의 무거움 2022. 10. 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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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전 ‘심심한 사과’ 관련 논란이 있었고 시간이 지났지만 기록위해 적어둔다. 웹툰 작가 사인회 주최했던 카페측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라는 문장을 썼는데 심심하다는 뜻은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을 지루하고 무료한 뜻으로 오해석하여 항의 댓글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문해력이나 단어 이해도가 낮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에 대한 정지우 변호사는 소통에 대한 태도 자체의 변질이 문제라 말하기도 한다.

 

모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나는 여기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 번째로 (모르는 것에 대한)’부끄러움의 부재’이다. 부끄러움은 내가 말한 것이나 행동한 것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다. 이 성찰이 없으면 내 언행에 대해 잘 한것인지 또는 잘 못된 것인지 생각이 없어진다. 위 사태와 같이 현 사회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이런 사람들이 큰 소리를 치기도 한다.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되는 행동을 하거나 단어를 잘못해석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이후 부끄러움이 없이 당당해지면 안된다.

 

1984년이 되던 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1984’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 의 한 장면
(나는)언어가 아직까지 중요하다고 생각

둘째는 언어에 대한 중요성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중에 하나가 ‘1984’인데 통제 방식중 하나가 언어이고 언어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권력층은 단어의 단순화로 대중의 사고를 통제한다고 말한다. 늘상 구어체로 쓰이는 단어에 익숙해지면 우리의 사고는 확장이 아닌 자본과 미디어의 힘에 점차 축소되고 그 언어에만 국한될 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언어가 가진 확장성, 추상적인 것은 눈에 안보이지만 스며든다

시대가 변화면서 사회는 항상 격차를 만들어 왔다. 예전에는 한자나 라틴어 이해로 구분을 지었고 현대시대에는 자본주의가 결합되면서 영어와 자본이 지금 격차를 설명한다. 모를 수도 있지만 부끄러워 해야한다. 단순한 단어와 언어에 익숙해지면 사고는 그 언어에 국한되고 확장성은 닫힌다. 내가 사진 한계와 틀을 깨고 나아가려는 노력이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언어는 힘이고 권력이자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욱 배우고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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